안녕. 너는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아주 선명하게 기억해. 우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는데 어느 맑은 날이었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너와 너 친구들이 와서 나를 그냥 노래방으로 끌고 갔잖아. 너를 쳐다보는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내 눈빛이 너와 친구들에게도 살갑지 않다며.
노래방 마이크 책 리모컨 잡히는 대로 나를 때렸지. 너희는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복도에서부터 화장실까지 끌고가서 내 얼굴이 터지도록 때렸어. 사실 너 친구들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아. 그 날 처음 봤으니까.
근데 그날 처음 본 너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아. 너가 했던 말 때문일까. 너가 했던 말 기억해? 내 손이 다 아프네. 야. 이 정도 때렸으면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지.라고 했잖아.
내가 너가 누군지 알고 내가 왜 맞는지도 모르는데 왜 사과해야하냐는 말에 나같은 애는 처음본다며 계속 때렸어. 결국 너넨 나를 포기하고 갔어.
나는 그날 찢어진 교복을 입은 채로 집에 와서 아무렇지 않게 샤워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부모님을 기다렸어. 집에 오신 엄마는 퉁퉁부은 내 얼굴을 보고 단번에 알아채셨어. 근데 엄마가 뭐라고 하는데 귀가 안들리더라.
눈물범벅이 된 부모님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어. 부모님 얼굴을 본 순간, 안도감을 느꼈을까. 그대로 기절했던 나는 응급실에서 눈을 떴는데, 고막이 터져버렸더라고.
넌 때릴 때 내 얼굴은 봤겠지만, 맞은 후에 내 얼굴은 못봤지.? 결국 얼굴 전체가 붓고 멍이 퍼졌었어.부모님은 경찰에 신고하셨고, 너와 너희 친구들 부모님까지 다 만나고 오셨어. 근데 부모님은 너희를 보고나서 용서하는게 어떠냐고 하시더라. 너와 너의 친구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아 보였대. 그래서 더이상의 불행을 겪게하면 너희가 더 엇나간 인생을 살 것 같다고 하셨어.
사실 난 너희 얼굴만 다시 보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처벌따위는 상관하지 않았어. 나에겐 사랑만 주시는 부모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
하지만 내가 아무때나 기절하는 바람에, 내 부모님은 늘 내 곁에만 계셔야하는 희생의 세월을 보내셨지. 그리고 평생을 그 날 하교길에 나를 데리러 나오지 않으신 본인들을 탓하며 사셨어.
내가 흘렸던. 내 부모님이 흘렸던 희생의 눈물의 고통의 1%만 너에게 주고 싶었다. 정말. 부모님의 보살핌에도. 난 결국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정을 주지 못하고. 사람도 못믿는 그런 사람으로 변했어.
살면서 평생을 생각했어. 너를 다시 만나는 날 똑같이 해주겠다고. 내가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는걸 알게되신 부모님이 날위해서 결국 택하셨던건 이민이었어.
그렇게 나는 너를 잊고, 평범했던 나를 다시 찾았고 지금까지 행복했었어. 그런데 얼마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너의 사진을 봤어. 너의 얼굴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나는. 성인이 된 너의 얼굴도 단번에 알아보았어.
너는 결혼을 해서 이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구나. 사실 너의 사진을 보고 너를 저주하는 댓글을 남기고 싶었어. 너가 내게 준 한 순간의 고통으로 나와 내 부모님은 평생을 힘들게 살았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환하게 웃고 살 수 있는지.
근데 너의 아이가 웃는 사진을 보니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 난 평생 너가 불행하기를 바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가 행복해보이는 모습도 나쁘지 않네.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거든. 난 아이를 낳고서야 진짜 사랑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의 희생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에. 나는 항상 내가 너를 진심으로 용서하길 기도했었어.
너도 이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니, 많은 감정을 느끼고 또 행복함을 느끼고 있을거라고 생각해. 너의 보물같은 아이에게는 나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너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게 조심해서 소중히 키우길 바란다.
혹시라도 너가 이글을 보게 되더라도.
너 이야기인지 모를수도 있어.
하지만 너가 어렸을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기억이 난다면.
진심으로 한 번 쯤은 후회해줬으면 좋겠다.
너의 한 순간의 잘못으로 누군가는 평생을 힘들어 했으니까.
